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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책]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줄거리, 리뷰, 작가의 생애

by 헬로우제주 2023. 3. 10.

커트 보니것 - 제5도살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박찬욱이 사랑한 작가 커트 보니것,  알쓸인잡의 심채경 박사가 소개한 그의 책 <제5도살장>의 줄거리와 리뷰, 이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생에 대해. 그리고 그의 위트넘치는 문장까지 살펴보겠다.

1. 제5도살장 줄거리

소설은 화자인 '나' 가 말해주는 주인공 '빌리 필그림'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다. 빌리 필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미국인 병사로 병사이기는 하나 딱히 군인다운 면모라고는 없다. 전쟁 시에도 후방에만 머물던 그는 룩셈부르크 보병 연대에서 죽은 군인의 보충병으로 가게 된다. 막상 그가 도착했을 때 보병 연대는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 상태. 생존자는 빌리를 포함한 4명으로 그들마저도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우여곡절 끝 그들이 도착한 곳을 독일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 그 중에서도 빌리가 가게 된 곳이 바로 제5도살장이다. 드레스덴은 국제법으로 보호받은 도시로 군수산업도 없고 병력도 많지 않은, 그저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차별 폭격이 벌어진다. 제5도살장에 숨어있던 빌리와 그의 무리는 가까스로 생명을 건지지만 무려 13만명이 죽고 도시는 초토화되고 만다. 소설에서는 그 모습을 '달 표면'같다고 표현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온 빌리는 치료를 받고 검안 학교를 다니다 검안 학교 설립자의 딸과 결혼 후 사업을 통해 큰 성공을 이룬다. 그리고 20여 년 후 빌리는 4차원의 행성인 트랄파마도어에 납치된다. 그 행성에서 그는 동물안에 갇힌 동물처럼 지낸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그를 위해 지구의 유명 여배우 몬테나 와일드 핵을 납치해 같은 우리에 가두고 그들은 그안에서 결혼식을 하며 나름의 행복을 찾아 지낸다. 트랄파마도어에서 몇 년을 시간을 보낸 빌리이지만 다시 지구로 돌아왔을 땐 고작 100만분의 1초가 지난 것 뿐. 그렇게 빌리는 다시 지구의 삶을 살아간다. 검안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는 추락하고, 부조정사와 빌리만 살아남지만 트랄파마도어에서 돌아온 빌리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트랄파마도어 행성은 4차원으로 그들에게는 과거,현재,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고 모든 것은 같은 선상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빌리는 이제 언론을 통해 트랄파마도어에 납치됐던 일들을 밝히지만 딸의 구박과 조롱을 받을 뿐이다. 그런 생활 중 그는 결국 드레스덴 폭격에서 같이 살아남았던 포로 한명에게 총을 맞아 죽게된다. 

 

2. 작품의 SF적 관점에서 리뷰

위의 줄거리는 그의 생애를 시간대 별로 요약한 것과 같지만 사실 이 소설은 이런 시간적인 흐름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빌리 필그림은 트랄파마도어식의 4차원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펼쳐진다. 포로시절 때로, 결혼 후 검안사 시절 때로, 트랄파마도어의 시절 때로, 포로 전일 때로 그야말로 뒤죽박죽 기술되고 있어 혹자들은 '읽기 힘든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반전 소설이면서 SF소설이기도 한데 이러한 글의 방식은 SF소설적 장치로 매우 적합하다. 4차원은 3차원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의 시간적인 흐름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일일 뿐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죽지만 저기서는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기에 (반복이라는 개념도 맞지 않겠지만) 죽음을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공상소설 속 이야기같지만 실제로 우주물리학적인 사고로 봤을 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존재가치, 삶의 의미, 자유의지 등 무궁무진한 철학적 질문들이 던져지기도 한 지점이다. 소설에서는 모든 죽음 뒤에 '뭐 그런거지.'라는 짧은 문장이 붙는데 그 문장은 무려 106번이나 되뇌여진다. 소설 속에 죽음은 대개 대량학살적이거나 허무개그같은 (추락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총에 맞아 죽거나, 심한 차 사고 속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났지만 차에서 새어나온 일산화탄소로 사망하거나 하는) 식인데 이런 장차들에서 작가의 허무주의, 염세주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3. 작가의 생애 - 삶, 철학, 이미지

커트 보니것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어째서,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는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1922년 출생한 그는 코넬대학교에 생화학과에 입학, 재학 중 반전 글을 기고하고 성적은 개판치는 바람에 학교에서 경고를 먹고 미군에 입대한다. 전공을 살려 특수 병과 소속으로 입대한 그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벌지 대전투 중 독일군에 잡혀 드레스덴에 가고 제5도살장이란 도살장을 개조한 포로 수용소에 갇혀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한다. 이 경험은 이 소설의 토대가 되었다. 종전 이후 시카고대학교 인류학과 석사 과정에서 '고양이 요람'이라는 작품으로 학위를 취득한다. 보니것의 작품은 인본주의적 사상, 블랙코미디, 염세주의, 허무주의가 가득한 글로 그의 작품은 보헤미안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미지를 많은 고민 끝에 '개발'해 낸 것으로 사실 그는 매우 합리적이고 계산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류는 '히피'와 같은 반사회적인 흐름이 강했고 그는 그 이미지에 편승하고자 자신의 외모적, 작품적 스타일을 변경했다. 실제로 제5도살장은 당시의 시대 조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그는 미국의 위대한 대작가로 발돋음하였다. 그는 80대 중반까지 매일 담배 2갑을 피우면서도 건강히 지내다가 지붕 수리를 하러 올라가던 중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소설 속 죽음들과 매우 닮아있는 죽음이랄까?

 

4. 인상깊은 글귀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

"끔찍한 것은 잊어라, 좋은 시간에 집중."

"우리는 기분좋은 순간들을 보면서 영원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예를 들어 우리가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듯이 모든 순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거지."

"모든 것은 아름다웠고 그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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