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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줄거리, 리뷰, 작가의 삶

by 헬로우제주 2023. 3. 30.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무라카미하루키가 사랑한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줄거리와 나의 리뷰, 그리고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특징에 대하여.

1.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줄거리

소설은 네 명의 인물이 진을 마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집 주인이자 심장전문의 멜 맥기니스, 그녀의 두 번째 아내 테레사(이하 테리), 화자인 '나' 닉, 닉의 아내 로라. 이들은 술을 마시며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리는 자신의 전 남편이 자신을 때리고, 죽이려 하고, 죽으려 했지만 그 모든 이유는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멜은 테리에게 그건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만 테리는 그것도 사랑이었음을 인정하라고 한다. 테리의 전 남편 에드는 테리를 때리고, 죽이려 하다가 테리가 떠나자 쥐약을 먹고 스스로 생을 떠나려 했지만 이웃들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죽지 않은 채 병원으로 실려왔고 테리는 그의 마지막을 지킨다. 멜과 테리는 닉과 로라에게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지만 그들의 그 사람과 상황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한다. 단지 타인의 상황을 판단하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1년 6개월째 이어온 닉과 로라의 사랑은 아직 열정적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멜은 말한다. 인간이란 현재 지금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하더라도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다시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멜 자신은 지금은 전처를 혐오하지만 과거의 어느 때엔 생명보다도 사랑했노라고. 그것들은 다 진심이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며 사랑에 대한 모호함과 유한함에 대해 말한다.

 

멜은 다른 에피소드를 하나 더 꺼낸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실려온 교통사고를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술에 취해 운전을 한 10대의 차가 노부부의 차를 들이받아 운전자인 10대 아이는 즉사하고 노부부는 간신히 생명을 붙든 채 병원에 실려온다. 목숨은 유지했지만 그들은 정말 미라꼴로 눈코입만 뚫린 채 온몸을 깁스와 붕대에 의지하고 있다. 남편보다 아내의 상태가 더 심각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자포자기 상태로, 그 이유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으로 아내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멜은 말한다.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알겠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다가 점점 취해가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2. 리뷰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는 계기는 아무래도 '그가 유명해서?' 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그의 명성만 접해 듣고 처음 그의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응? 이게 뭐야? 이렇게 끝이라고?" 장담컨대 나만 이런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소설은 낯설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기승전결을 따르고, 아, 기승전결은 차치하더라도 이야기의 근거와 단서를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기승전결 어딘가의 한 부분을 또각 떼어내서 그 부분만을 대충 설명하는 식이다. 때문에 독자는 그의 소설을 읽고 난 후 혼돈과 낯섦을 느끼지만 더불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이 조각난 이야기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 단편소설은 그나마 다른 소설에 비해 많은 단서를 주면서 소설의 주제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나가지만 결국은 애매모호하게 끝을 맺는다. 멜은 사랑의 모호함, 유한함, 이기심을, 테리는 사랑의 폭력성, 소유욕을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소설의 내용 중 사고를 당한 70대 노부부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남편의 자포자기 키포인트가 '사고가 났다, 아내가 다쳤다.'가 아니라 '내 목을 움직여 내 눈으로 아내를 볼 수 없다.'는 지점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그것은 아내에 대한 소유욕에서 비롯되는 그의 이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절망에서 비롯되는 이기심이었을까? 그 무어라 하더라도 그의 사랑 역시 순수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멜은 비관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진정한 사랑을 위해" 건배를 한다. 그 건배가 진정으로 진정한 사랑을 위한 건배였는지 아니면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건배였는지는 독자의 해석에 달리겠지만 나는 그래도 '진정으로 진정한 사랑을 위한 건배'였기를 바란다.

 

3. 레이먼드 카버, 작가의 삶. 그의 특징.

우리나라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유명세는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연결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때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라니.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레이먼드 카버는 1938년 생으로 그는 블루컬러의 삶에 대한 소설을 많이 남겼고 실제로 그의 삶도 그와 같았다. 그는 10대 후반에 결혼을 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글을 전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공장, 병원 수위, 정원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양육했다. 카버는 평생 단편소설만 집필했는데 그의 환경이 장편소설을 쓸 만큼의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는 에스콰이어지에 단편을 수록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형편 때문에 점차 술에 의지하게 된다. 결국 그는 알코올중독과 파산을 거듭하다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다. 그는 1977년 6월 2일 금주를 결심하고 죽을 때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1979년 41세에 두 번째 부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1983년 45세의 나이에 그의 대표작 <대성당>을 발표하고 그의 삶은 일변한다. <대성당>은 발표 즉시 문단의 호평을 받고 이듬해인 1984년 퓰리처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그는 문단의 유명인사가 되고 성공한 작가대열에 오른다. 이후 집필활동을 계속하다가 이른 나이인 50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이 색다른 이유가 무얼까 생각했을 때, 그의 작품에는 몇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고 미니멀하다. 번역서로만 읽은 것인데도 그의 짧고 단순하고 명료한 문체가 느껴진다. (장황한 러시아소설 읽다가 읽게 되면 더욱더 그의 문체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그의 문체의 특징은 "대화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길고 장황한 상황설명보다 한 두 마디의 대화가 더욱 효과적이고 입체적으로 그 상황의 무드를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소설을 읽고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의 등장인물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이다. 정확한 직업이나 나이를 밝히지 않아도 소설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루저들의 외로움, 우울, 고립감 등이 느껴지는데, 그 상황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등장인물들이 미묘한 깨달음(?)을 얻는 데에 그의 작품의 미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깨달음은 인생의 커다란 의미이거나 전환점인 것이 아니라 인생의 작은 행복이나 희망, 구원 혹은 작은 허무나 쓸쓸함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레이먼드 카버는 단편소설만 쓴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빨리 읽히지 않는다. 그 조각난 이야기들을 완성 짓기 위해 독자인 내가 스스로 시간을 들여 작품과 앞과 뒤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로 인해 완성되는 소설.' 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이토록 특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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